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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이클론 작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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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여담 == * 작전을 승인한 두 정부는 모두 비극적으로 끝났다. 하르마탄을 승인한 군정은 첫 무기가 국경에 도착한 지 여덟 달 만에 무너졌고, 사이클론을 승인한 베인브리지는 사비에트군이 철수를 끝낸 해에 내란 수괴로 처형되었다. 작전은 두 정부보다 오래 살아남았다. * 고르드 벨트 수송을 위해 빌베른과 중국에서 들여온 노새는 1986~1991년 약 5,500두였다. 노새 조달 예산은 국가정보국 예산서에 「산악 운송 지원」이라는 항목으로 잡혔는데, 1988년 정보위원회 심사에서 한 위원이 이를 차량 구매비로 알고 단가가 지나치게 싸다고 문제 삼은 일화가 있다. * 무자헤딘이 스팅어를 부른 '신의 화살'은 루이나에서도 유행어가 되어, 1987년 무렵 정치 풍자 만화에서 예상치 못한 결정적 한 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. * 카라마노스는 1991년 국가정보국을 퇴직했고, 2002년 합동조사위원회 증언에서 "우리는 전쟁을 이겼고, 그다음에 무엇이 오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산을 주지 않았다"고 말했다. 이 발언은 영화 《윈턴의 전쟁》의 마지막 장면의 모티프가 되었다. * 들로네는 1999년 국가정보국을 떠났다. 2002년 전문이 공개된 뒤 언론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고, 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진술에서 "그 전문은 경고가 아니라 질문이었다. 질문에 대한 답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"라고만 적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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